[김현정의 뉴스쇼]<광복회 김원웅 회장> 간도특설대 긍정한 백선엽, 현충원 안장 불가... 윤봉길 의거로 사망한 日사령관 따라 창씨개명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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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이어서 현충원 안장 자체에 반대하는 분의 목소리 들어보죠. 광복회의 김원웅 회장 연결이 돼 있습니다. 김원웅 회장님 나와 계십니까?

◆ 김원웅>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앞에 인터뷰 들으셨을 텐데요. 공과 과가 둘 다 존재하지만, 공이 훨씬 더 크다. 이런 주장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김원웅> 제가 작년 6월에 광복회장에 취임해서 백선엽 일에 대해서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그 재한군인회가 저보고 국군의 아버지를 왜 이렇게 비판하느냐 하면서 저희 사무실에 수백명이 와서 시위도 하고 데모도 하고 저를 사퇴하라,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요.

저는, 우리 전 국민이 존경하는 윤봉길 의사께서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던지셨잖아요. 그 폭탄에 의해서 그 자리에서 죽은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 두 사람 중 하나가 그 당시에 일본의 육군대신이었고 관동군 사령관이었던 시라카와 요시노리였거든요. 그런데 백선엽 씨가 그때 독립군 토벌대에 몸 담고 있으면서 그걸 보고 내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바로 그 시라카와 요시노리다, 내 창씨개명을 시라카와 요시노리로 해야지, 그래서 시라카와 요시노리로 창씨개명을 한 분입니다.
 

윤봉길 의사가 1932년 훙커우 의거 직전 태극기를 배경으로 촬영한 '의거 결의 사진'



◇ 김현정> 이게 본인도 인정한 정설인가요?

◆ 김원웅> 본인까지 인정했는지 모르겠는데 그 이름을

◇ 김현정> 가진 건 맞고.

◆ 김원웅> 쓴 건 확실합니다. 그런데 시라카와 요리노리가 국군의 아버지라고 그러면 윤봉길 의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1945년에 미군정이 맥아더가 들어와서 시작하면서. 저는 국회에서 노무현 정부 때 통일정책, 외교정책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을 지냈는데요. 많은 외교적인 비공개된 문서를 접근한 적이 있었어요. 맥아더가 미군정에서 본부에, 본국(미국)에 보고한 보고문서의 기본 핵심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국은 민족주의자들이 집권하면 골치 아프다. 친일파들이 집권해야만 미국인 말을 잘 듣는 나라가 된다.’ 실제로 우리를 독립시킬 생각을 크게 가슴에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독립군들이 들어오려고 했더니, 해체하고 들어와라 개인 자격으로 들어와라. 이렇게 하고.

만주에서 독립군 토벌에서 가장 잔인한 토벌을 했던, 일본 측 입장에서는 아주 혁혁한 공을 세웠던 간도 특설대 사람들을 불러들여요. 불러들여서 미 군정하에서 그들을 심부름 시키려니까 그 사람들이 영어를 모르잖아요. 영어 교육을 시킵니다. 그게 영어군사학교입니다. 그리고 1948년에 해방되니까 그들을 중심으로 국군을 만들고 초대 육군참모총장, 제2대 육군참모장장, 21대까지 한 명도 안 빼놓고 독립군 토벌하던 사람이 육군참모총장을 한 것이 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 김현정> 그런데 백선엽 장군 측에서는 ‘간도 특설대에 몸을 담기는 했지만 내가 독립운동가를 사살한다든지 탄압한 적은 없다.’ 이렇게 또 말씀을 하세요.

◆ 김원웅> 구차스러운 변명이고요. 그 간도 특설대의 설립 목적 자체가 독립군 토벌입니다.

◇ 김현정> 그리고 지금 백선엽 장군이 친일파 명단에 이름을 올린 거죠? 인정이 된 거죠?

◆ 김원웅> 그렇죠.

◇ 김현정> 본인도 ‘그 부분에 대해서 나는 비난받는 것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라고 회고록에 스스로 또 적은 부분이 있는데. 간도 특설대에 몸 담았던 것을 자랑스러워한다든지 문제없다라고 본인이 생각하신 건 분명히 아니에요.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과로 인해 현충원 안장은 불가하다고 보시는 거군요?
 

휴전회담 한국대표를 역임한 백선엽 장군이 육군에 기증한 군 역사 관련 기록물 중 1951년 7월 10일 유엔 대표들이 휴전회담을 위해 개성으로 가기에 앞서 기념촬영 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김원웅> 한 번도 그 문제를 뼈저리게 사과한 적이 없어요.

◇ 김현정> 어쩔 수 없다까지만 했지 사과하신 적은 없어요?

◆ 김원웅> 사과한 적이 없어요. 그건 중요한 현상입니다. 우리가 일제 때 친일을 했던 사람들을 해방 후에 우리 민족을 구성원으로 끌어안는 것도 좋은데. 그것을 본인이 진실을 밝히고 사과하고, 그리고 끌어안아야 민족 화해가 됩니다. 그때 내가 뭐 잘못했어?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을 민족 구성원으로 끌어안을 수는 없죠.

◇ 김현정> ‘뭐 잘못했어?’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회고록을 보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진정하게 사과한 적은 없다.

◆ 김원웅> 일본에서 발간한 회고록을 보면요. 곳곳에 간도 특설대 활동이 자랑스러움이 되어 있어요. 자랑했다고는 안 하지만 자랑스러운, 우리가 얼마나 멋있게 했느냐, 용감하게 싸웠느냐 그리고 얼마나 많이 일본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느냐, 이런 말이 쓰여 있어요.

◇ 김현정> 알겠습니다. 일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역시 현행법에 따라서 현충원 안장은 해야 한다, 쪽이고. 다만 서울이냐 대전이냐에서 서울에 장군 묘역은 다 찼으니 대전 현충원으로 안장을 결정했습니다. 정부가. 이렇게 되자 유족들도 거기까지는 받아들였거든요. 그런데 재향군인회라든지 조금 전에 육군협회라든지 이런 곳에서는 아니다, 서울현충원으로 모셔야 한다. 장군 묘역이 찼으면 산업훈장 받은 이력이 있으니 사회공헌자 묘역으로 모시면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주장들 하시는데요.

◆ 김원웅> 사회공헌자 묘역에 예를 들면 장군 출신들이 한 명도 묻힌 적이 없어요. 다른 데, 예를 들면 문화, 예술, 학술, 이런 데 대한 사회 공헌을 한 분들, 그리고 순수하게 산업화한 분들이 있지. 그거를 자기 군 생활을 하다가 한전 사장했다든지 이렇게 해서 기득권끼리 돌려먹기로 한 평생을 지닌 직책을 가지고 훈장을 받은 걸 가지고 묻힌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 김현정> 서울 현충원 당연히 지금 반대이신 거고.

◆ 김원웅> 지금 국가유공자 묘역이라고 있는데요. 장군 묘역이 아니고. 그 묘역에 묻힌 분들은 대개 문화, 예술, 비정치인 분들이 많이 묻혀 있어요. 장군이 묻혀 있지 않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지금 서울 현충원 안장 그걸 넘어서, 서울 현충원을 주장하시는 것은 좀 무리한 요구다, 궤변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 김원웅> 그렇죠. 서울현충원에 묻힐 수 있다는 얘기는 법규에도 어긋나고 법규를 과도하게 확대 해석해서 설명하는 거죠, 현행돼 있는 현충원의 국립묘지법을 상당히 왜곡해서 설명하는 겁니다.

◇ 김현정> 파묘 얘기가 잠깐 나온 적이 있었잖아요. 나왔다가 지금은 들어간 것 같습니다만 거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어요?

◆ 김원웅> 지난 1월 2일에 제가 광복회원들과 함께 국립묘지를 방문했습니다. 거기에 풍수지리 하는 분들이 가장 명당이라는 곳이 있어요. 그래서 올라가 봤더니 그 안에, 그 가운데 한 분이 묻혀 있는데. 그분이 일제 때 무슨 말을 했냐면 ‘조선청년 꿈은 천황폐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신이 되는 것이다.’ 이런 분이 묻혀 있어요. 그분이 육군참모총장도 보냈고 또 장관도 지냈어요.

그런 분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 친일했던 사람들이 그런 식의 언행한 사람들이 많이 묻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야, 이거는 아닌데.’ 국가적인 중요한 행사를 할 때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하잖아요. 묵념을 할 때 묵념의 대상이 그런 분들이 들어가니까 착잡하잖아요.

◇ 김현정> 알겠습니다. 광복회장님의 입장은 그러하신 것으로 듣고요. 지금 다양한 의견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의견들 더 보내주십시오. 양쪽의 주장은 뭔지, 공이냐 과냐 이 부분에 대한 논란, 다뤄봤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원웅> 네, 고맙습니다.

◇ 김현정> 김원웅 광복회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