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독립운동가 전덕기 선생 공훈선양 학술강연회 인사말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4.10

인 사 말 씀

오늘, 바쁘신 중에도 윤경로 한성대 명예교수님을 비롯한 전덕기(全德基) 선생님의 공훈선양 학술회의에 참석해 주신 발표자와 토론자, 그리고 내빈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누구보다도 이번 행사에 참석해주신 유족분들께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나 독립협회에 가입, 만민공동회에서 간부로 활약하신 선생님께서는

독립협회 해산 후에는 기독교에 더욱 정진하시어 상동교회 목사가 되어 공옥학교와 상동 청년학원을 설립, 교육계몽 운동에 진력하셨습니다.

1905년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을사늑약이 늑결되자, 상동교회에 여러 동지들을 모아 이에 대한 반대운동으로 대한문 앞에 나아가 상소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일경이 출동하여 상소운동에 참여한 이들을 체포해가자, 선생님을 포함한 상동그룹 회원들은 을사조약 파기와 을사5적의 처단을 위해 시민들이 궐기할 것을 호소하는 격렬한 가두연설과 시위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
또한 1906년 국민교육회를 설립하여 국권회복을 위한 교육구국 운동을 전개하신 선생님께서는 공옥학교의 교장이 되어 학도들에게 애국교육을 시켰으며,

선생님께서 관리하던 청년학원은 애국청년의 양성소로 발전하여 1907년에는 이준 열사를 헤이그 밀사로 파견하는데 배후의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1907년 4월에는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인 신민회 창립의 핵심인사로 활동하셨으며 신민회의 재정부장과 서울 총감의 책임을 맡기도 하셨습니다.

1909년에는 청년학우회의 발기인이 되어 청년운동을 지도하기도 하신 선생님께서는 애국계몽운동 기간에 전국 각지를 순회하면서 신민회의 이념에 따라 열정적으로 국권회복을 위한 애국계몽을 전개하셨습니다.

1911년 9월, 신민회를 해체하려는 목적으로 일제가 꾸며낸 총독암살 음모사건에 의해 800여명의 신민회원을 검거할 때 선생님께서도 피체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으셨습니다.

일제의 잔혹한 고문으로 늑막염이 생기셨으며, 그로 인해 1914년에 도탄에 빠진 민족을 구하기 위해 한창 일하실 나이인 39세를 일기로 서거하고 말았습니다.

올해로 순국 100주기를 맞아 상고해보니, 선생님이야말로 누구보다도 한 시대를 진정으로 의롭게 사셨던 분이라 생각됩니다.

특히 식민지배의 역사왜곡과 독도 망언으로 우리의 영토주권을 유린하려는 일본의 우경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오늘날,

선생님과 같은 독립운동 선열들의 고귀한 구국정신과 숭고한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나갈 인재들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또한 역사를 바로 알고, 자라나는 세대들이 역사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올바로 교육시켜 나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번 행사를 준비하신 전덕기목사 추모사업회 회장, 서 철 목사님을 비롯하여 상동교회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리며,

바쁘신 중에도 참석해 주신 모든 분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4. 3. 13

광복회장 박 유 철